흔해빠진독서

고미숙,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휴머니스트, 2007.

시월의숲 2008. 5. 30. 19:32

내가 가입한 다음의 어느 카페에서 처음 그 집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수유+너머>라는 요상한 이름과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만을 대략 보고 넘겼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이념을 가진 집단인지, 어떤 성과물들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열하일기>의 재해석(이라고 해야하나? 아님 재발견?)자로 널리 알려진 고미숙이라는 작가가 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처음 그 제목을 보았을 때 가슴 속에서 무언가 출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빽빽히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 책이 유독 내 눈길을 끈 것도 아마도 그 제목 때문일 것이다. 자유면 그냥 자유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니! 이제는 식상하게만 들리던 자유라는 단어가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책을 들고 나와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진정 자유롭기를 꿈꾸고 실천함으로써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게 된 유목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문학적, 사회과학적, 철학적인 사유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적, 예술적, 생태적 사유도 접목시켜 그야말로 경계가 없는 유목적 사유를 하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리고 <수유+너머>는 그러한 탈주적이고 경계가 없는 사유를 가능케 하는 실험의 장이자 하나의 공동체였다. 다름으로써 서로 똑같다는 사실을 깨우친 이들의 축제의 장!

 

물론 그런 공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수유+너머>가 마냥 '그들'의 집단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또한 처음에는 밥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만든 지식인 집단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속에 묘사된 <수유+너머>라는 단체의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에너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꿈꾸고 실천해나가고 있는 유목적 코뮌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그 이론과 신념의 뿌리가 일상이라는 지평과 단단히 밀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의 선동도, 구호도 없지만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게 하는 그들의 열정과 순수한 지식에의 갈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속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예기치않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의 자의식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그들, 정말 멋지다. 실제야 어떻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척 흥분되는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부수적 산물인 책까지 생산하여 널리 읽히게 할 수 있으니 오죽 즐거운 일일 것인가!

 

누가 그랬던가. 희열 중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큰 희열이 바로 앎의 즐거움, 앎에서 오는 희열이라고. <수유+너머>의 사람들은 그러한 희열을 맛본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듯 터무니없는 열정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가진 순수한 열정과 신념, 과거와 미래, 삶에의 비전이 꺼지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 집단이 사라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가담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어디에 있건 유목적 사유를 하고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곳으로,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현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향해가고 있는 중이므로.

 

 

사족 -  늘 개인적이고, 단자적으로 살아온 내가 이런 책을 읽고 감동을 받게 된 것을 보면 내 안에도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보다. 단순히 외로움을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라 유쾌하고 지적이며 무엇보다 자유로운 집단, 경계를 허무는 집단에 대한 갈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