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히라노 게이치로, 『달』, 문학동네, 2003.

시월의숲 2008. 6. 5. 20:37

그런 소설이 있다. 환상문학이라고 이름붙여진, 꼭 그렇지 않더라도 소설 속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보이거나 소설 자체가 아예 환상의 나라에서 펼쳐진다거나, 혹은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예컨데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 말하는 까마귀랄지, 양사나이 같은) 소설.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은 좀 달랐다.

 

그의 소설은 시종일관 달무리처럼 흐릿한 빛을 발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슬며시 지워진 소설이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이 현실인지 환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그리하여 결국 소설 속의 세계로 취한 듯 몽롱하게 빠져들게 하는 소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지워진 자리에 그는 소설의 또다른 매력인 고풍스러운 문체를 깔아놓았다. 그것은 마치 낭만주의 시대의 문학처럼, 혹은 연극에서의 과장된 대사처럼 감상적이고, 격정적이며 유려하고 비극적이었다.

 

시인인 주인공이 왕선악이라는 산에서 뱀에게 다리를 물려 쓰러져 있는 것을 노승이 발견하여 암자로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뱀의 독이 낫는 동안 그는 밤마다 한 여인의 꿈을 꾸게 되는데 유독 그 얼굴만은 볼 수가 없다. 그녀가 얼굴을 돌릴라치면 꿈이 깨는 까닭이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노승이 나병 걸린 노파가 묵는 곳이라며 가지 말라 했던 선방 근처 작은 암자에 있는 여인인가? 그곳에 있는 사람은 진정 노파인가, 아니면 그가 밤마다 꿈 속에서 만난, 얼굴을 알 수 없는 젊은 여인인가?

 

꿈과 현실, 환상과 현실을 교묘히 결합시켜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게이치로의 문체는 과히 매력적이었다. 자연과 합일되려는 순간을 갈망하는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한 주인공이고보면 그 모든 것들이 그가 뱀에 물려 죽어가면서 본 짧은 순간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 어느 누가 알 것인가! 그저 은은한 달빛에 취하듯 취하면 되는 것을!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에 대한 미디어의 과장된 칭찬이 그저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