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조지 오웰, 『동물농장』, 민음사, 2005.

시월의숲 2008. 6. 9. 18:32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만화 <동물농장>을 본 적이 있다. 그땐 그 만화의 원작이 소설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보았는데, 어린 마음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영상이 또렷하게 기억 난다. 그런 걸 보면 시공을 초월해서 읽히는 고전문학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언제 어느 때든, 읽는 이의 혹은 보는 이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 말이다.

 

소설로 읽은 <동물농장>도 만화에서 보던 것 이상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그저 인간들을 풍자하는 우화라는 막연한 인상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가 겨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제각각 어떤 인물들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 비판적 사회주의자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비판하려고 한 것은 사회주의 자체가 아니었다. 처음에 나도 이 부분에서 혼란스러웠는데, 소설을 읽고 나는 그가 당연히 사회주의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쓴 에세이(책에 실려 있는)를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모순을 비판한 비판적 사회주의자 였던 것이다.

 

그는 러시아 혁명의 실패가 지도층의 부패와 일반군중들의 무지와 사회주의 사상의 맹목적 추종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지도자격인 돼지 나폴레옹은 혁명을 일으켜 자신들을 착취해온 인간들을 농장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이 권력의 달콤함에 취한 나머지 초기의 혁명정신을 망각하고 만다. 그 자신이 인간들과 다를바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다른 동물들은 돼지들의 선전과 선동에 넘어가 스스로 착취를 당하면서도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자각하지 못한다. 조지 오웰은 바로 그러한 전체주의적 권력의 맹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하게 되는 항구성, 보편성을 지니게 되는 이유가 된다.

 

책 뒷면에 실린 해설처럼, <동물농장>은 작가가 몸담고 있었던 시대의 현실을 바탕으로 씌여진 풍자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화라는 형식에 힘입어 특정 시대를 뛰어넘는 항구성을 가진다. 풍자와 우화의 절묘한 결합! 우리가 정치적 인간인 이상 <동물농장>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읽혀진다는 것이 꼭 억압적 지배와 착취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과거엔 그랬었지, 하며 추억되는 소설, 역사적 사료로서만 읽히는 <동물농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몽상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