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아멜리 노통브, 『배고픔의 자서전』, 열린책들, 2006.

시월의숲 2008. 4. 22. 18:34

처음에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출간했다가 나중에는 그 말을 삭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일 수도 있고 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제목처럼 작가의 자서전으로 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이란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니기에 완전한 사실이라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픽션일 수도 있다는 얘기. 어쨌든 자전적 색채가 짙은 소설 쯤으로 해두자. 아니, 허구적 색채가 가미된 자서전으로 해야할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렇다. 이 책이 소설이냐, 자서전이냐는 논쟁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읽기에 이 책은, 소설로 생각하고 읽느냐, 자서전으로 생각하고 읽느냐에 따라서 그 재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는 소설로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에 재미가 좀 덜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책을 자서전, 혹은 자전적 색채가 짙은 작품(물론 읽다보면 알게 되지만)으로 생각하고 읽었다면 좀 더 재미가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노통브의 소설을 이 책까지 합쳐서 고작 세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먼저 읽었던 두 소설보다 이 책이 좀 더 산만했으며 좀 더 가라앉아 있었고, 좀 덜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했다. 그러니까 앞의 소설들에 비해 번뜩이는 강렬함이랄까 뭐, 그런 것이 좀 약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이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처럼 대화체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노통브 특유의 화려하고 거침없는 입담은 여전했지만.

 

자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노통브 특유의 자서전이라 할 만하다.  자신의 탄생에서부터 유년시절, 청년시절을 거쳐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어쩌면 지루하고 감상적이 되기 십상인, 살아온 과정의 이야기를 노통브는 특유의 개성있는 문체로 조모조목 풀어낸다. 바로 '배고픔'이라는 단어로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배고픔이란 이런 것이다.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20쪽)"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니! 이러니, 그녀의 배고픔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종류의 것임은 자명한 일. 그래도 그러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또 그녀에게 씌워진 운명이었다. 그 몸부림. 끔찍한 결핍과 옥죄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그녀에게 있어 '글쓰기'였다.

 

그래서 그녀의 배고픔은 좀 사라졌을까? 애초에 채워지지 않을 그 배고픔에서?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어렸을 때 그녀를 키워준 니쇼상의 마지막 말, 고베의 큰 지진 때문에 안부전화를 건 그녀에게 니쇼상이 한 말이 결국 그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아무러면 어때? 아직은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