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귀향

시월의숲 2008. 9. 12. 23:28

대략 삼 주 만에 집에 오는 것 같다. 아니, 사 주 만인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그 익숙함에서 오는 묘한 거리감 때문에 숨을 깊이 들이마셔야만 했다. 고작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이건 뭘 의미하는 건지.

 

집에 오니 다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신경 쓸 일 없는 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있으니 얼굴이든 뭐든 좋아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정말 그런가? 나야 매일 보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타지에서의 생활도 그리 자유롭지는 못한데, 다들 인사치례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뭐, 반갑다는 인사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본 가족들. 여전했다. 고작 한 달 남짓이란 기간이니 오랜만에, 라는 말도 어색한 표현이긴 하지만 말이다. 늘 그랬듯, 아버지와 나, 동생, 이렇게 세 식구는 늘 가던 갈비집으로 들어가 늘 시켜먹던 가브리살과 소주를 시켰다. 변한 듯, 그렇지 않은 듯 우리는 고기를 집어먹고 소주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갈비집을 나오니 거리는 짐을 바리바리 싸든 사람들로 부쩍 붐볐고, 한 눈에도 타지에서 온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약간은 들뜨고 피곤한 모습으로 낯선 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문득 저들에게 귀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한 일 년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다보면 알게 될까?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이 그리움이 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추억과 멀어짐이 있어야 하는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 그리움은 커지는 것일까? 아,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지독한 삶의 아이러니인가. 나는 종종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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