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시월의숲 2008. 9. 6. 10:56

일교차가 점점 커지는 계절이다. 밤에는 서늘하던 기운이 오후가 되어감에 따라 더워진다. 바람은 서늘함을 품고 있지만 햇볕은 아직 따갑다. 비로소 가을의 문턱에 서 있음을 느낀다.

 

어제는 출장을 다녀왔다. 하늘을 가리며 길께 뻗어있는 소나무가 제법 빼곡히 들어찬 곳이었다. 오후였는데도 소나무숲 사이를 걸어갈 때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숲은 사람을 치유해주는 능력또한 가진 것일까? 어딘지 모르게 내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소나무에서 날아오는 향기가 가볍게 코를 자극하며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며칠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음반이 왔다. 한곡한곡 귀를 기울여 듣고 있으니 다른 세상의 입구에 와 있는 듯 느껴졌다. 특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무반주 첼로곡을 듣고 있을 때면 어딘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어쩌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그것에 최대한 가까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소나무숲을 거닐거나 음악을 듣는 일, 혹은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매번 그 무형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끄적거렸지만('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스미레처럼) 그럴 때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거나 미묘하게 일그러진채 기묘한 형상이 되어있기 일쑤였다. 원래 내가 느꼈던 것, 처음에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원래 언어란 그런 것인가?

 

끊임없이 어떤 것의 주위를 배회하며 그것에 대해 쓰는 것. 그 어떤 것은 언어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밖에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해서 하는 모든 말들이 결코 사랑이 아니듯이.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다보면 언젠가 그 실체에 보다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알멩이가 사라진 껍데기도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리라. 그것이 알멩이에 대해서 말해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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