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여름 지나 가을,

시월의숲 2008. 9. 26. 16:34

바람이 제법 찬 걸 보니 이제서야 가을이 온 듯하다. 9월인데도 불구하고 여름 날씨처럼 더워서 투덜거렸었는데 이제서야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하지만 기후의 변화로 말미암아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니, 가을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바로 겨울이 올지도 모를 노릇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왜 다들 그리도 빨리 사라지는 것인지. 취할 순간도 주지 않고, 아차 하는 사이에.

 

아쉬우면 아쉬운데로 즐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쉬움에 젖어 한숨만 쉬고 있다면 더 커다란 후회가 내 목을 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쉬우면 아쉬운데로,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지는데로 보내줄 줄 알아야 하겠지. 내가 잡는다고 잡힐 것도 아니거나와 또 쉬이 보내주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남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이 나를 집어삼킬 것인데. 그래, 그것은 아쉽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쉽고 그립기 때문에 더더욱.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오래 전에 들었던 그 말이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그 말은 내가 삶을 살면 살수록 가슴 속에 더욱 깊고 견고하게 각인 되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사실 좀 슬픈 일이긴 하다. 그건 내가 늙어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삶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는 것, 모든 희로애락들이 결국은 지나가리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지는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만큼의 나이가 들어야 깨닫게 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말기를. 나이가 적으면 적은데로, 많으면 많은데로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것도 없으리라. 그것은 과거라는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 갇히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므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도 아직 멀었다. 여름 지나 가을,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전부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수의 이면  (0) 2008.10.05
  (0) 2008.10.02
소유  (0) 2008.09.21
귀향  (0) 2008.09.12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0) 200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