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처음 그 마음

시월의숲 2008. 12. 20. 00:18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일까? 맨 처음 먹었던 그 마음이 이제는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가물거리며 멀어져간다. 고작 다섯 달이 지나가고 있을 뿐인데. 이곳에 와서 일기장에 펜으로 꼭꼭 눌러 적었던 숱한 다짐들과 그때 느꼈던 낯선 감정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것은 시간이 주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요즘은 자꾸 그때의 결심과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과 낯선 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니 안이한 생각이 들고, 더욱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연기처럼 슬슬 피어오른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실망만 더해가고. 얼마만큼의 실망이 있어야 나는 눈꼽만큼의 기대도 품지 않을 수 있을런지. 사람들에게 자꾸 기대하는 내가 싫고, 별 것 아닌 일에 상처받는 내가 정말 싫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내 그런 소심함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설사 얼마못가 잊혀지고 버려지는 숱한 결심과 다짐들일지라도 또 다시 결심을 하고 다짐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또 2008년이 지나간다. 그리하여 2009년, 나는 또 새로운 결심을 할 것이다. 그것이 처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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