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눈에 드리워진 숲의 그림자

시월의숲 2008. 12. 23. 21:18

지난 주말, 무척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와 함께 눈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올해들어 온 사방이 하얗게 쌓여있는 눈을 보지 못한지라, 눈이 온다는 말에 약간 설레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주말 내내 여전히 맑은 날씨였고, 기온이 제법 내려가긴 했으나, 당연하다는 듯 눈은 내리지 않았다. 눈은, 내가 있는 곳만 요리조리 피해서 내리는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눈을 보았다. 눈은 햇볕이 닿지 않는 계곡의 숲 속에 온전한 모습으로 하얀 숨을 쉬고 있었다. 아, 그 하얀빛에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보기만 해도 찬 기운이 스며들어 눈이 시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에 드리워진 나무들의 그림자. 마치 추억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드리워진 그림자의 찬 기운. 서늘하고도 아련한 그 기운을 폐 깊숙히 들이마시고 싶은 충동을 달래느라 오랜시간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마치 눈이 숲의 그림자를 빨아들이는 듯한, 묘한 긴장감. 그늘이 오래도록 드리워진 곳의 눈은 더디게 녹는다.

 

눈과 나무 사이의 서늘한 긴장감이 담겨있는 그림자를, 그 서늘함을 나는 사랑한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뿐이고  (0) 2008.12.31
다행이다  (0) 2008.12.26
처음 그 마음  (0) 2008.12.20
형이에요, 어른이에요?  (0) 2008.12.15
쓸쓸한 위로  (0) 2008.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