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다행이다

시월의숲 2008. 12. 26. 20:51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어제 저녁에는 동생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였다. 평소 집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성미여서 무심하다는 말을 많이 듣던 터였다. 집 생각은 항상 하고 있지만 어쩐지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는다. 이건 내 가족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독 나만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 무책임하게 보인다면, 뭐 어쩔 수 없고.

 

어쨌든 별 거 아닌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내 생에 몇 번째의 크리스마스니,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호들갑을 떨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쉬는 날이니 좋을 뿐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집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크리스마스 특집 영화들이 수많은 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34번가의 기적>과 <오즈의 마법사>를 보았다. <34번가의 기적>은 정말 산타가 나오는 믿음에 관한 영화였고, <오즈의 마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트에서 찍은 듯한 영화였다. 오래 전 영화였지만 제법 동화적이고 재미있었다. 도로시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좋았다. 나는 그 영화가 뮤지컬 영화인지 어제 처음 알았다.

 

계속 앉거나 누운 자세로 텔레비전을 봐서 엉덩이와 허리, 목이 아팠다.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렇듯 약간의 통증만을 남긴 채 지나갔다. 그래도 다행이다. 잠을 많이 자서 좋았고, 하루종일 뒹굴뒹굴거리며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때론 그렇듯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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