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형이에요, 어른이에요?

시월의숲 2008. 12. 15. 17:35

일요일 오후, J는 도서관의 어린이열람실에 앉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아침 아홉 시 부터 저녁 여섯 시 까지 사람들이 서가에서 골라 온 책들을 대여해주고, 반납한 책들을 다시 서가에 갖다꽂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라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 빌려가는 책과 반납한 책들이 넘쳐났다. 폭우같이 쏟아지던 책들을 어느정도 정리한 뒤 J는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들어왔다. J는 쉴틈없이 드나드는 악마같은 아이들로 인해 지쳐있었고, 신경이 약간 곤두서 있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책은 보는 둥마는둥 하고 이내 J앞에 서서 J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흐르는 콧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쉭쉭거리며 거친 숨을 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했다. 약간 당황하고 화가 난 J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 아이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뭘 봐?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형이에요?"

  "......?"

다짜고짜 형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J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아이가 다시 한번 물었다.

  "형이에요?"

  "형이라니? 내가 니 형이냐고 묻는거야?"

  "그럼 어른이에요?"

그제서야 J는 아이가 말하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여 평소 사람들로부터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J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J를 보고 형이라고 불러야할지 아저씨라고 불러야할지 헤깔렸던 것이다. J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들어야하는지 모를,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갑작스럽게 웃는 J를 쳐다보고는 코를 실룩거리며 의아해했다. 하하하! 아이들은 그렇듯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게 말을 한다. J는 그것이 새삼 재미있어서 그날의 피로도 잊은채 아이와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결국 대답하지 못한 그 물음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나는 형이야, 어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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