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게

시월의숲 2009. 3. 24. 19:02

 

1.

날이 다시 쌀쌀해졌다.  지난 며칠 따뜻했던 날들이 기억나 벌써부터 그립긴 하지만 그래도 3월인데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일게다. 매화는 벌써 피었다 지고, 벚꽃과 개나리가 필 차례인가. 출근하는 길에 어느 집 담장 안에 핀 개나리가 유난히 애처로워 보이는 건,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2.

내일은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다. 늘 고향에서 받다가 이번에는 직장이 있는 이 곳에서 받게 되었다. 올해만 받으면 끝이다. 일 년에 삼 일 정도 받는 것 뿐인데, 매번 할때마다 번거롭고 짜증스럽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걸음이 이상해지고, 괜히 잠이 오고, 총을 질질 끌게 되고... 이런 일들은 아마도 2년이 넘는 기간동안 자신이 받았던 군생활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일 것이다. 상명하복의 규율과 특유의 억압적 분위기를 견뎌내야했던 기억이 군복을 입으면 다시 되살아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고향친구 하나 없는 타지에서 홀로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는 건 좀 외롭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3.

야구를 보다. 일본과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 결과는 3대 5로 한국이 졌다. 결승전 답게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못한 접전이었다. 기량면에서는 일본이 한 수 위인 것 같았지만, 우리나라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오늘 야구경기는 박수까지 쳐가면서 재밌게 보았다. 이건 냄비같이 끓어오르다 식는 애국심의 발로일까? 생각건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스포츠의 속성인, 서로 경쟁하는데서 오는 어떤 원천적인 쾌감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가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4.

야구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길게 뻗어나가는 공을 볼 때의 그 순간도 포함될 것이다. 근심, 걱정이 한 방에 뚫리는 것 같은 그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시속 150킬로를 육박하는 삶의 무게가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것이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겠지만, 야구에도 삶의 여러 국면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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