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것

시월의숲 2009. 4. 4. 09:50

요즘은 시간을 살고 있다기 보다 그냥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부쩍 따뜻해진 공기와 햇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하는 벚꽃의 화려함도 내 이런 무기력함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걸 봄 탄다고 하던가. 아니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내 머릿속을 잠식해 들어오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더욱 답답한 '그것'.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 그렇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것. 행동해야만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 그러한 것들 때문에 요즘 내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렇다면 그 행동이란 것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렇다.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무모한 용기가 내겐 없다. 안타깝지만 나에 대해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러다 '그것' 때문에 내가 파멸하는 것은 아닐까? 끝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것'에 먹히는 것은 아닐까? 트럭에 깔려 죽은 고양이의 납작한 시체처럼. 내장은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은 그것처럼. 어디로 사라지는조차 알 수 없는.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보내고, 보내고 남은 시간. 생을 살아야하는 시간. 아직은 그 시간에 나를 맡겨 보기로 한다. 언제나 이기는 것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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