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한계

시월의숲 2009. 3. 21. 09:23

내가 글을 올린 어느 카페의 누군가의 덧글을 생각한다. 그는 내 글을 읽고 그게 내 한계라고 했다. 푸념과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처음 그 덧글을 읽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어쩌면 그게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계라는 말을,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가르치듯이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소설을 쓰고 싶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아마 그렇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쓴 글은 일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글은 삶에 보다 밀착된 글, 그러면서 거기에서 오는 모순과 불합리 같은 것들을 드러낸 글,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해온 것은 아닌가? 내 속의 불행과 절망과 슬픔이 전부인 것처럼 나는 나를 가장해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푸념도 그는 진저리난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렇게 푸념밖에 늘어놓지 못하는 것이 내 한계라면.

 

나는 내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가 생각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나를 감싸고 있는 견고한 껍데기를 내 던지지 않는 한. 개의 목을 따지 않는 한(아, 물론 주술적인 의미에서,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스미레처럼). 맞아서 피를 흘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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