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보이지 않는 어둠

시월의숲 2009. 4. 10. 22:49

사실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정치에 대해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내 그런 관심과 반응은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건 사고에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고, 정치인들의 몸싸움에 욕을 하고 적당히 분개하는, 지극히 안이하고도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지극히 소심하고 용기없는 내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어딘가에서는 등록금 인하를 부르짖으며 삭발을 하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대학생도 있고, 방송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부에 맞서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도 있다. 또한 내가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이 믿는 정의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것이며, 또한 내가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도처에서 살인은 일어나고, 재앙처럼 산불은 꺼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가진 자들은 더욱 가지게 된다. 이 모든 혼란스러운 세상을 나는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덧없게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아직 사회의 모순에 격렬히 가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 그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이런 회의주의적이고 패배적인 의식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농밀하게 깔려 있는 것만 같다. 음험하고 비겁하면서도 역겨운 무언가가. 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부터 비롯되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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