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누구나 다 그런 것일까

시월의숲 2009. 4. 14. 21:19

 

1.

누구나 그런 때가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지는 때,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 부드러운 살이 아니라 딱딱하고 불쾌한 껍질처럼 느껴져서 그것을 무참히 깨버리고 싶을 때, 내가 나를 배반하고 싶어지는 때가.

 

 

2.

혼자만의 성에 갇힌 한 아이를 본다. 직장동료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도, 동생과 전화통화를 할 때도, 심지어 숨을 쉬거나 햇살이나 바람, 비를 맞을 때도 그곳엔 항상 혼자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어쩐지 '내'가 '나'에게 다가갈 수 없다. 웅크린 어깨, 고개숙인 얼굴, 어두운 뒷모습... 그것이 진정 나인가?

 

 

3.

텔레비전을 본다. 태국의 시장과 몽골의 초원, 티베트의 고원.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 그들도  때때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까? 화면으로 본 그들의 얼굴엔 내가 부리고 있는 감정의 사치는 보이지 않는다. 내 이런 감정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는 것처럼. 오로지 생활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의 지난함과 엄숙함, 혹은 체념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다. 문득,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4.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직접 보고 느껴보는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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