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을잠자리의 전설

시월의숲 2009. 7. 20. 14:38

1.

장마가 아직 완전히 물러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기예보에선 오늘과 내일 무척이나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닌듯 하다. 아, 하늘은 그렇게 많은 비를 쏟아내고도 또 쏟아낼 것이 있는지... 마음을 좀 단단히 먹어야겠다.

 

 

2.

후텁지근한 날씨다. 그저께 집에 내려갔다가 방금 올라왔다. 이곳은 내 고향집보다는 좀 덜 더워서 그나마 좀 살만하다. 집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동안 내가 거리에서 느낀 것은, 잠자리가 참 많다, 는 사실이었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잠자리란 가을 추수할 때쯤이나 추석 전 벌초하러 갈 때 쯤 시원한 대기 중을 날아다니는 곤충이었는데, 지금은 한여름 뜨거운 공기 속을 날아다니는 곤충이라니, 잠자리들도 과거의 기억을 자꾸 잊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잠자리의 기억을 지우는 것일까. 잠자리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의 기억을 무심코, 아무런 생각없이 지워버리는 인간들이 때론 무섭게 느껴진다. 그러다 언젠가는 모든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지워져버릴지도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면,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의 추한 기억을 하루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인가.

 

 

3.

두 팔을 허공에 휘휘 저으면 잠자리 한 두 마리씩은 탁탁 와 부딪히는(좀 과장을 하자면) 이 여름. 내 자전거 누가 쌔벼갔어! 엄마한테 다 말할거야!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몸이 마른 아이의 분노도 뜨거운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이 여름. 저 아이는 방금 자신의 자전거 옆을 스치고 지나간 붉은 가을 잠자리의 기억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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