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집으로...

시월의숲 2009. 8. 29. 12:21

집에 내려가는 날이다. 뭐, 집에 내려가야 한다고 정해놓은 날은 아니지만 어쨌든, 3시 버스를 타고 집에 내려간다. 오전에 내려갈까 하다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니, 9시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자버렸다. 쉴 때는 늦잠을 좀 자줘야지. 사실 일찍 집에 내려가도 할 일이 없다. 솔직히 할 일이 없는게 아니라 몸을 더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다. 집에 가면 밀린 청소가 한가득이니, 집안 어른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집에 가는 일이 마냥 내키지만은 않는다.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녀석은 청소는 커녕 손도 까딱 안하려고 하니, 집에서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가끔씩 내려가는 날마다 청소당번이 되는 것이다. 집에 가서도 쉬지 못하고 고작 청소와 심부름을 해야하는 내 신세란, 정말 피곤한 인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연민이 생기는 때가 바로 이 때이다. 그래서 더,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에게 짜증만 부리고, 신경질만 내는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도 달라질 것 없는 현실이 때론 너무나 답답해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고, 나만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일 것이라는 말은 결코 진리가 아닌 것만 같다. 나만 달라져서 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 서로에게 문을 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인가, 하는 회의가, 집에 내려갈 때마다 든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 슬프다. 어쩌면 이것이 내 이기심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욱 더. 투정은 부리지 말자고, 헛된 기대는 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아직도 나는 내 가족들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모두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나는 그 느린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답답하여 좀 더 빨리 변화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일지도. 정말, 그런 것이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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