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죽음에 이르는 병

시월의숲 2009. 8. 26. 20:45

1.

무심코 달력을 보니 오늘이 칠석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지만, 내가 있는 이 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대신 오늘도 무척이나 더웠다. 아직은 팔월이라 시원해지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그래도 기온이 조금 내려가 숨 쉬기가 한결 수월하다. 덥다고 투덜대긴 했어도 바람은 이미 뜨거운 여름의 그것이 아니다. 계절의 미묘한 흐름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바람'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가을을 기다리는 내 성급한 마음의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고.

 

 

2.

가을이 기다려지긴 하지만, 요즘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마냥 가을이 오는 것을 좋아할 수만은 없다. 신종플루 때문에 개학일이 일주일 정도 늦춰진 학교도 많고, 합병증으로 죽는 사람도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에 맞서는 신종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그 모습을 달리하며 퍼져나간다. 이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 같은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다가는 모든 인간들이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역시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헤이해진 틈을 소리소문 없이 파고들어 전 존재를 마비시키고, 무력화시키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방안에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것, 그 뿐이다. 이 말은 즉, 더 나아가 사회라는 공동체의 와해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3.

28일 후. 세상은 분노 바이러스에 의해 대부분의 인간들이 좀비가 되고, 좀비는 좀비를 만들고, 결국 좀비들만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되어버린다. 그 중에서도 운좋게 감염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옥같은 그 곳에서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을 한다면 도대체 어느 곳으로? 영화 <28일후>는 그렇듯 절망적이고 광적인 미래를 그려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분노 바이러스와 지금의 신종플루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염이 되는 경로이다. 분노 바이러스는 그것에 감염된 사람의 침이나 피 같은 것이 정상인의 입이나 상처난 곳으로 직접 침투되어야 발병되는 것이지만, 신종플루는 그저 감염자의 곁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걸릴 수 있는 것이다. 기침이나 재채기 등에 의해 공기 중으로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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