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조직 인간

시월의숲 2009. 9. 29. 21:02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속해 있다. 속해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위계질서가 확고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어쩌면 감옥과 같은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귄위주의적인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써 일을 해야만 하는 나는 매일 상사의 눈치와 비위를 살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이런 어리석은!). 상사는 매일 감시의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무단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는지,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지, 복무관련 지식은 어느 정도인지 알려고 한다. 그리고 그 상사의 상사는 내 바로 위 상사에 대해서 슬쩍 떠보듯 물어보면서 내가 진실을 말하기를, 그 진실이 내 바로 위 상사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척 이야기를 하지만, 돌아서서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것은 없는지, 혹 나로 인해 내 바로 윗상사가 곤란에 처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한다. 아, 이 무슨 불필요한 눈속임이란 말인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벽히 조직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조직적으로 내 직속 상사와 그 윗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고, 종종 그보다 더 높은 상사의 눈치까지 봐야한다. 그들의 눈빛을 대할때면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뭔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이미 내뱉어버린 말들을 곰곰히 되짚어보며 고민에 빠진다.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수 없다. 다독이며 독려하는 따스한 눈길이 아니라 감시하고 훈계하며 다그치는 눈빛.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권위있어 보이려고 미간에 힘을 주어 주름을 만드는 인간들. 어느 날에는 내가 다른 동료들에게 그냥 편하게 그들을 대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들이 뭐 대수냐고 말했다가, 별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을 다 봤다는 눈빛으로 모두들 나를 쳐다본 적이 있다. 그 당혹스러움이라니. 그때 깨달았다. 모두들 조직의 인간으로써 조직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너무도 자명한 진리를. 더러워도 웃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차라리 그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내 피해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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