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미안함을 모르는 사람

시월의숲 2009. 9. 28. 19:47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듣는 이의 동의를 구하지만, 상대방이 그의 말에 몇 마디의 말을 덧붙이려고 하면 무 자르듯 말을 자르고 자신의 처지를 또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가 하는 말에 담긴 상황이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들어줘야 하는 사람에게 그의 말은 정해진 규칙을 어겨야 하는 일이기에 선뜻 동의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가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관철시키려는 자신의 의지가 상대방의 처지에 비추어 봤을 때 곤란한 일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변변한 대꾸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툭툭 끊어대는 그의 대화방법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상대방은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해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두 번, 세 번... 자꾸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정이 떨어지고 만다. 그는 점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세우며 들먹거리기 시작한다. 자신은 분명 부탁을 해야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고충과 곤란스러움, 인내와 서비스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그에 대해 눈꼽만큼의 미안함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의외로 많다. 미안함을 모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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