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

시월의숲 2009. 10. 8. 20:18

아침, 온몸으로 데운 이불 속 온기를 박차고 나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수를 한 후, 얼굴의 당김이 심해지고, 아무리 스킨 로션을 발라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입술이 건조해진다. 뜨거운 커피와 뜨거운 국물이 더이상 어색하지 않다. 나무잎이 갈색으로 변하여 땅으로 자꾸 떨어지고, 떨어진 낙엽은 갈수록 까슬까슬해져서 밟으면 서그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바람에 문짝이 흔들리는 소리,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갸릉거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소리에 민감해진다. 여름날, 몸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었던 옷차림의 사람들이 점차 긴 옷으로 몸을 가리기 시작한다. 햇살 가득한 오후의 운동장 한가운데 있어도 이제 그리 눈부시지 않다. 그늘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피부로 스며든다. 사람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한다.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혹은 생각에 잠겨있는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늘어졌던 정신이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진다. 시월이 왔음을 말해주는 이 생생한 징표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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