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을 탓

시월의숲 2009. 10. 22. 22:37

계절 탓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피곤할 일도 없는데, 오히려 청명한 날씨에 머리가 더욱 맑아져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 머리가 무겁고, 눈이 뻑뻑하고 입술이 터서 신경이 쓰인다. 몇몇 사람들에게서 예전보다 더 마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걸 가을 탄다고 하는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어제는 하루동안에만 세 명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나와 친분은 없는 사람이어서, 문상을 갈 이유는 없었지만, 어째 하루만에 내 주위에서 세 명이나 되는 사람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보니 기분이 우울해지고 말았다. 창 밖은 하얀 구름이 조형물처럼 이곳 저곳에 떠다니고 있었고, 그 뒤로 파아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알지 못하는, 죽음으로써 비로소 내게 인식되어진 사람들의 얼굴을 부질없이 떠올려보려다 그만 두었다. 얼굴은 알 길이 없지만, 저 구름처럼 존재했었던 그들, 지금은 소식으로밖에 전해지지 않는,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버릴 구름과도 같은 그들. 그들의 죽음이 지금 저기, 저 하늘에 구름처럼 존재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하늘과 구름이 바로 그들이었다.

 

누군가는 이 가을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이 가을에 죽을 것이다. 죽음과 탄생, 결락과 결실, 쇠퇴와 부흥... 이 모든 것이 가을의 속성을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들의 죽음이 계절탓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어쨌거나 그들의 명복을, 모든 죽은이들의 명복을 빌어야 할것만 같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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