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사회생활의 정의

시월의숲 2009. 10. 28. 22:51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술을 마셨다. 물론 몇 잔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술은 술이니까. 술을 마시냐는 의사의 질문에 조금요, 라고 대답했더니, 이제는 조금도 마시면 안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가게 되면 한 두 잔, 많게는 네 다섯 잔 정도 마시게 된다. 아예 마시지 않으려고 작정을 해도, 예전에는 잘 마셔놓고 이제와서 왜 못 마시냐며 오히려 나를 다그치는 사람들의 눈초리 때문에 그 결심은 늘 흔들린다. 나는 속이 탈이 나서 그렇다고, 의사가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그랬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지만, 이미 그건 그들에게 약발이 먹히지 않는 핑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술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결코 내게 악의가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의 흥을 최대한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사양하고 있긴 하지만, 전혀 마시지 않을수는 없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술자리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이라는 것의 정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참석하고 싶지 않지만 참석해야 하고, 술을 마시면 안되지만 마셔야만 하는 것. 아직 사회생활의 요령이 부족한 나는 참석해야만 하는 모임을 자연스럽게 참석하지 않는 방법과 술을 마셔야만 하는 자리에서 술을 적당히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고로 나는 앞서 정의한 사회생활에 부합되지 않는 인물인 셈이다. 다른말로 사회생활에 결함이 많은 인물이라고나 할까. 슬프다기 보다는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술이 없는 모임이란 정영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정영 술이 모든 모임의 주제요, 안건이요, 목적이요, 주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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