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생일

시월의숲 2009. 10. 24. 22:21

새들도 자살을 할까?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해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저 밖에서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유리로 된 출입문에 부딪친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비둘기 한 마리가 유리문에 부딪쳐 생긴 소리였다. 유리문에는 비둘기가 부딪치면서 생긴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는데, 손을 대면 비둘기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을 것 같아 조금 슬퍼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 비둘기의 시체가, 너무나도 다소곳한 모습으로, 마치 잠을 자듯 누워 있었다. 이 비둘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날아와 어디로 날아가려 했던 것일까? 일 년 넘게 출퇴근을 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비둘기였는데. 까치에게 쫓기는 중이었을까? 아니면 자살을? 죽은 비둘기를 묻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건드리니, 제법 많은 깃털이 숭숭 빠졌다. 깃털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미련없이 날아가버렸지만,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숭숭 빠지는 것같은 느낌에, 알 수 없는 안타까움과 허망함을 느꼈다. 비둘기를 옮긴 후 창고에서 삽을 꺼내와 백일홍 나무 밑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비둘기의 시체를 넣고 흙을 덮었다.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내년에 필 백일홍의 붉은 꽃은 아마도 내가 묻은 비둘기의 환생이겠지. 비둘기는 죽었지만 백일홍은 자라고, 나도 살아서 오늘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이런 걸 생일이라고 하던가. 나의 삶은 꼭 누군가의 죽음 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강하게 든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바라본 세상  (0) 2009.11.02
사회생활의 정의  (0) 2009.10.28
가을 탓  (0) 2009.10.22
어둠 속에서  (0) 2009.10.19
글을 쓰려면  (0) 200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