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바라본 세상

시월의숲 2009. 11. 2. 18:11

영주에서 울진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차장 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내가 보는 세상은 이렇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들, 폭력적이고 우연한 사건 사고들과, 너무도 극적이어서 진부하기 그지없는 드라마와 사자와 호랑이 등이 새끼 임팔라를 잡아먹는 동물의 세계는 이미 너무나도 눈(실제 피부나 다른 감각들에 의해서가 아니라)에 익숙하여 생기를 잃은지 오래다. 그것은 잔인하지만 더이상 잔인하지 않고, 폭력적이지만 더이상 폭력적이지 않으며, 너무도 우연적이지만 더이상 우연적이지 않다. 그것은 내가 접근할 수 있는(보고, 듣고, 느낄수 있는) 감각의 범위 밖에 존재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과는 아주 먼, 낯설고 척박하며,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곳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내가 그것을 보고 있는 곳은 24인치 텔레비전이 놓인 조그마한 단칸방일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눕거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며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며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문 경우이지만, 어쨌거나 전혀 슬픈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쑥 눈물이 나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적잖이 당황스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과연 진짜일까, 라는 생각이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는 중에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실제로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전부는 버스의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로 저 풍경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주에 한 번씩 나만의 세상과 대면하는 셈이 된다.

 

내가 바라본 세상 속 풍경은 온통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여서 여름엔 짙푸른 녹색바다와 귀를 찢을듯한 매미의 울음소리, 그리고 장마로 인해 불었거나 가뭄으로 인해 말라버린 냇물이고, 가을이면 차갑게 부는 바람과 단풍든 산과 황금들판이며, 겨울이면 얼어붙은 계곡의 물과 차디찬 바위와 눈이 내린 산과 허허로운 들판같은 것이다. 그 풍경들은 언제나, 늘, 그렇게 약속이나 한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스스로 변화한다. 오늘은 올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10도나 떨어진 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옷을 따뜻하게 입을 것을 권유하는 뉴스가 나왔다. 아직은 가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버스가 봉화 춘양에 다다랐을 때부터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이 내 바람을 무참히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래, 그것은 눈, 이었다. 마치 눈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의자 깊숙이 묻었던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유심히 바라보게 만드는 눈. 저것은 진짜 눈이 아닌가! 내가 텔레비젼에서 보던 그 눈과 같은 것이지만, 전혀 다른 눈. 새삼 설레는 마음에 무작정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눈이 와... 하지만 이내 마땅히 보낼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폴더를 접었다. 외로움이란 첫눈을 보았을 때의 감정을 같이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과도 같은 말임을 깨달으면서. 그리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눈과 실제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볼때의 느낌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달으면서. 하지만 그 무엇도 실제로 내가 타던 버스에서 내려서 눈을 맞으며, 그 눈 속을 걸어들어가는 것과 감히 비교할수 없으리라. 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보다 더 생생한 것은 내가 그 세상으로 걸어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내가 바로 풍경이, 세상이 되는 것이므로. 그런 후에야 나는 비로소 세상으로 걸어들어가는 하나의 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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