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흔들리는 것들

시월의숲 2009. 11. 11. 10:38

무작정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면의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다그치는데, 나는 왜 그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한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내가 나를 알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귓가로 웅웅거리는 소리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바람이 세상의 모든 야윈 나무들과, 빗장이 맞지 않는 사립문과, 빗물에 젖어 땅바닥에 처절하게 붙어 있는 낙엽들을 흔드는 소리였다. 나는 내가 방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어딘가로 붕 떠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출근을 하려고 자취방의 방문을 열었을 때, 저 멀리서 들리는 듯한, 두꺼운 이불로 감싼듯한 소리가 갑자기 강도처럼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옷깃을 세우고, 어깨를 움츠린채 동동걸음을 걸었다. 오늘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날이다. 바람은 현실을 비현실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축축한 비가 비현실을 더욱 명징하게 만들었다. 제법 튼튼할 것 같은 우산을 골라 왔지만, 그것을 펴는 순간 볼록하게 펼쳐졌던 우산이 오목하게 뒤집어졌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사무실에 앉아 창 밖의 바람을 주시한다. 낙엽은 유선형의 그림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거꾸로 솟은 빗자루가 되어 날아다니는 낙엽들을 위태롭게 쓸어댔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얼굴들. 나는 마른 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본다. 눈, 코, 입이 만져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바람의 꿈을 꾸고 있는가?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나를 쓸어버릴 것만 같아 나는 몸을 움츠린다. 나는 점점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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