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무척이나 신선하고, 깊은 울림을 가진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우연히 들어가 본, 한 소설가의 블로그에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익숙한 지명과, 내가 타고 다녔던 버스와, 그 버스 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발견했을 때 오는 특별한 느낌. 나는 언젠가 그의 소설을 읽었고, 그것에 대한 감상을 썼었다. 내 작은 방 한 귀퉁이에 얌전히 꽂혀 있는 그의 소설을 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금 꺼내본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얼마전 내가 있는 곳에 왔었고, 내가 타고 다녔던 버스를 탔으며, 내가 보았던 익숙한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느낀 이런 공감의 설렘이 문학소녀풍의 유치한 감상이라해도, 나는 이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나 또한 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에 남겨진 어떤 흔적이, 마치 내가 그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그'가 내게 남긴 흔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의 흔적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나로부터 탈출해서 때때로 나를 찾아오는 또다른 나 말이다. 그것이 그의 소설로 인해 떠돌다가 어느 순간 나를 발견해낸 것이다. 그것을 나는 그의 짧은 몇 줄의 문장들 속에서 발견했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온통 오해의 언어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감정의 닮은 꼴을 발견하는 때란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형도가 '어느 푸른 저녁'을 지었을 때의 그런 예기치 않은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