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시월의숲 2009. 11. 21. 21:35

잠시 스쳐지나갔던 사람의 채취나 어디선가 보았던 짧막한 문구 혹은 우연히 들었던 노래의 한 구절이, 그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때가 있다. 그것은 벼락처럼 예측불가능하고 순간적이지만 아주 강렬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짧막한 문구를 중얼거리거나, 노래의 한 소절을 반복적으로 흥얼거리게 만든다. 그것은 내 온 몸과 마음이 그 순간적인 만남에 완전히 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독과도 비슷하고 어떤 계시나 예감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듯 황홀한 순간들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이 일상처럼 매번 반복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마법의 주문이 아니게 된다. 다행히도 그 순간은 가끔씩 찾아오기 때문에 그토록 짧은 순간의 인상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향기나, 처음 본 문구 혹은 처음 들어본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들어 익숙한 것들도 내가 처한 상황이나 주위의 분위기 혹은 새로운 지식이나 심지어는 반복에 의한 익숙함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창출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만남에 더 잘 어울릴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오랫동안 내 머리와 가슴에 새겨져 있던 문구이다. 어째서 이 짧은 문장에 그토록 매혹 당했던 것일까? 돌아보면 좀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이 문장을 대할 때는 마치 그것이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어지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문장은 맨 처음 전혜린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어느새 전혜린이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오롯이 그 문장만이 깊고 어두운 암흑 속에서 서서히 희미한 빛을 발하며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설명하기도, 거부하기도 힘든 기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러한 힘이, 삶은 무한한 괴로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삶은 지속되고 긍정되는 것이라는 모순적인 깨달음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그 문장을 대할 때면 내가 겪었던 모든 괴로움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한 괴로움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그건 진정한 괴로움과 진정한 절망을 알지 못하는 자의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모든 괴로움과 절망은 상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괴로움과 절망에 절대적인 순위를 매길 수 있나? 네 괴로움은 내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나? 누구나 다 괴로움은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언제까지나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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