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북쪽 거실

시월의숲 2009. 12. 16. 21:39

나는 지금 K시의 한 모텔에 와 있다. 4일간의 교육을 받기 위해 나 혼자 낯선 곳에, 낯선 모텔에, 낯선 사람들을 지나쳐 와 있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이곳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파가 몰아닥쳤다. 출장을 오기 전 여벌의 옷을 준비해 오지 못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외투가 무척 얇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교육을 마치고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추운 나머지 신음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아아, 너무 춥구나. 추위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역시 추위 때문에 얼어붙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서 따뜻한 국물을 마셔야 할 텐데.. 모텔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는 저녁을 먹을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다. 띄엄띄엄 보이는 식당 중 깨끗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워서 어딘가를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식당은 식탁이 몇 개 놓여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된장찌개를 시켰다.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식당 주인들은 초저녁에 식사를 하러 들어오는 나를 조금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이내 활기에 찬 태도로 맞이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밥은 맛있었다. 서빙을 하던,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문까지 나와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식당을 나왔으나 모텔밖에 갈 곳이 없었다. 이 도시에는 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다. 완벽한 익명의 도시. 완벽한 익명으로서의 나. 나는 지금 차들이 질주하고, 강물이 흐르고, 커다란 건물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이 도시의 한 모텔에 있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든 갈 수 없다. 이 모텔 밖에는. 내 익명성이라고 해봤자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도시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이방인이야말로 그가 가는 모든 곳의 진정한 화자가 될 수 있으므로. 나는 그렇게 착각한다. 모텔방은 동굴처럼 어두침침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은밀하며,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다. 아무 할 일 없이 모텔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자신의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텔은 모든 갈 곳 없는 이들의 고독이 켜켜이 쌓여 있는, 지독히도 고독한 공간이다. 빛은 들어오지 않고(혹은 필요로 하지 않고), 공기는 끈적하고 답답하며, 침대는 너무나 넓다. 어제는 대여섯 번 잠에서 깨었다. 오랜 시간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채 한 시간도 지나있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꿈을 꾸었지만 깨어나면 그 꿈은 금세 사라져 버려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자도 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꿈을? , 하니까 출장 기간 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 생각났다. 꿈에 관한 책. 아니, 꿈 그 자체인 책.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책을 읽는다. 방의 모든 불(그래 봤자 침침하긴 마찬가지지만)을 켜놓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의 제목은 배수아의 <북쪽 거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울' 속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마치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배수아의 소설을 읽어서일까? 점차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 느껴진다. 이 모텔에 컴퓨터가 없었다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어찌 기록할 수가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K시의 낯선 모텔에서 익명의 고독이 익숙한 고독과 만나고 있는 한 풍경을 그 풍경 속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절규와 파괴. 이러한 기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데. K시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 이 모텔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나는 모텔에 새겨진 모든 정념과 고독의 기억들이 너무나 무겁다. 그것은 말하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된 것이리라. 내가 지금 이렇게 알 수 없는 말을 기록하는 것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그것의 풍경을 그려내는 일은 어쩌면 황홀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의 풍경은 낯선 듯 익숙할 것이며, 절망적인 듯 기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예감이. 아아, 나는 진정 꿈을 꾸고 있는가? 이러한 중얼거림은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내가 읽고 있는 <북쪽 거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단지 그런 것일 뿐.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 특선 다짐  (0) 2009.12.25
부산에 다녀오다  (0) 2009.12.25
늘 행복하기를  (0) 2009.12.10
그런 날이 있어요  (0) 2009.12.06
웃음  (0) 200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