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런 날이 있어요

시월의숲 2009. 12. 6. 22:50

그런 날이 있어요.

 

무작정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뒤져본다던가(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거나 혹은 전화를 걸 사람도 없으면서), 예전에 한참 주고받던 이메일의 맨 끝 페이지를 클릭해 본다던가, 괜히 바람불고 추운 거리를 목도리를 칭칭 동여메고 걸어다닌다던가, 혼자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다가 불현듯 씁쓸한 눈물이 난다던가 하는... 생각해보면 참 궁상맞은 일들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더군요. 전 대체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그런 기분에 곧잘 빠지곤 하는데(물론 시기에 관계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아시다시피 계절이 바뀌는 시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리죠.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순간순간을 지내고 나면 어느새 남는 것은 차곡차곡 쌓이는 나이와 체념과 미적지근한 타협(무엇과의 타협인지 알 수는 없어요) 같은 것들이더군요.

 

그리고 그런 날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지죠. 홍양님께서 말씀하신 카페 '도나'의 한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저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의 관계와 대화의 내용, 저들의 습관까지 모조리 상상하여 이야기하고 싶어져요.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도대체 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관계가 있을 것이고,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도대체 내가 왜 저들의 관계를 상상하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야 한단 말인가? 평소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터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저조차 어쩔 수 없어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거든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해야하고, 반대로 비밀을 가져야 하는 때가 반드시 있어요. 그럴 때 이야기 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슬픔인가요. 하지만 그런 상대란 쉽게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기에 그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어요. 뭐랄까, 말을 하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하고 견고한 벽을 대하고 있는듯이 느껴지는군요. 아아, 그 벽 뒤에 누군가 서 있을까요?

 

그렇듯, 이해는 하지만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들과 마주친다면,

 

무언가를 끄적이게 되죠. 사람들은 다 다르면서 또 다 비슷해요. 어쩌면 내가 그 사람과 똑같은 감정에 휩싸여 있는것 같아도,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감정의 세세한 결은 다 다르지요. 하지만 비슷하게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슬픔 뿐이지만, 너의 슬픔과 나의 슬픔이 똑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한 가지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나요? 그렇듯 똑같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해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보다 더 큰 슬픔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러한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사람마다 달라요. 누군가는 음식을 한없이 먹을 것이고, 누군가는 죽을 것처럼 운동장을 뛸 것이며, 또 누군가는 목청이 터질듯 소리를 지를 것이고, 어떤 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프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것처럼 글을 쓰겠지요. 그 중에 내가 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무언가를 끄적이는 거예요.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무엇이든 써야 하니까요. 그렇게 쓰여진 글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읽혀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죠.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고, 또 얼마만큼의 시간을 견딜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지금 내가 이렇게 길다면 긴 글을 쓰는 이유도,

 

다 거기 있을 거예요. 내게 주어진 감정과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두서가 없고, 횡설수설 해도 괜찮아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자기치유이자, 자기위로이니까. 죽지 않을 만큼의 소통만 있다면 인간은 살 수 있어요. 아, 적어도 저는 그래요. 그래서 이런 공간, 이런 글, 이런 소통이 제겐 참 중요하죠.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홍양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게 홍양님께서 제게 주신 네 번째 질문(이라 생각할께요)의 초라하고 궁색하기 그지없는 제 답변이에요. 쓸데없이 길어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고, 반드시 그래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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