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픔을 대하는 방식

시월의숲 2010. 1. 10. 17:29

어제는 뭘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점심을 급하게 먹은 탓인지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에 열이 났다. 전에도 가끔씩 체한 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손을 따기도 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었다. 도저히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동료직원의 양해를 구한 후 약을 지어왔다. 이럴 때 주말근무라니, 서글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객지에 나와 주말에 근무하는 것도 서러운데, 아프기까지 하다니. 추운 날씨가 괜시리 더 밉게 느껴졌다. 약을 먹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이 계속 메스꺼워서 결국 토하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여섯 시에 퇴근을 해서 집에와 저녁도 먹지 않고(못먹고) 바로 쓰러져 누웠다. 나는 왜이렇게 약하게 태어났는가 하는 자책과 밥을 좀 천천히 먹을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어 견딜 수 없었다. 평소에는 내가 혼자임을 느낄 겨를이 없거나, 느낀다 하여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는데, 몸이 아프니까 내가 혼자임이 절실히 느껴지고,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쉬운 것이니까. 고작 체한 것으로도 이런 기분이 느껴지다니. 아프면 일상적으로 하던 모든 일들이 더이상 일상적이지 않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질병의 보편성에 대해, 질병으로 인해 오는 정신적인 변화와 미지의 영역들에 대해 이야기했다지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나보다. 아프니까 더 외롭고 더 고독하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투정이나 하고 있으니. 명치 끝이 꽉 막힌 듯 아프고, 체온이 몇 도 더 올라가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픈 것으로 고작... 물론 이런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도 많이 불편하고(불편하기만 할 것인가!) 서글픈 일일 것이므로. 다만 아픈 몸을 대하는 정신의 반응이 문제다. 버지니아 울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픔을 외로움과 연결지으려는 유치한 짓은 더이상 하지 말아야지. 그건 아직 덜 아프다는 증거이며, 진정한 아픔을 모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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