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시월의숲 2010. 2. 21. 00:16

그의 나이는 서른 일곱 여덟 정도이고 성별은 남성이며 미혼이다. 그리 높은 연봉은 아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차도 있으며 성격도 소탈한 편이고, 키는 좀 작지만(180 이하는 루저라고 하는 시대니까) 외모도 못생긴 편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특유의 붙임성으로 호감을 사고 있고, 때론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누가봐도 상냥하고, 착하며 성실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직까지 미혼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아니, 도대체 왜 그 나이가 먹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는가, 라는 의문에서 비롯된 갖가지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빨리 장가를 가라는 조언의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의 성 정체성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었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는 선 자리가 들어오면 선을 봤으며,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 사람도 사실 꽤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제주도로 출장을 간 자리에서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도 내심 그가 싫지는 않았던지 출장을 다녀온 후에도 그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으며, 주말을 통해 몇 차례 그와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그와 만남을 가진 후 그녀는 그가 결혼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자신의 나이도 그리 적지는 않은터라 지금 그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으므로 불안하고 조급하긴 마찬가지였으나, 바로 그러한 조급함 때문에 그녀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사랑이라는 말이 유치하다면, 좋아하기는 하는 것일까? 좋아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혼기를 놓쳤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결혼에 매달리는 것일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녀 또한 나이가 많았고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일단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엉겹결에 결혼하기는 싫었다.

 

그는 그녀를 만난 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는 그녀를 놓치지 싫었다. 그녀를 지금 놓친다면 자신에게 다시는 여자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목덜미가 시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조급함이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결국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거는 전화를 받지 않고 급기야는 한동안 만나지 말자는 문자를 받기까지 했으니.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상대방을 깊이 알기도 전에 결혼부터 하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조급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조언이랍시고 건네는 말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그 숫자를 지워버리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그녀를 대하자.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자.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자 며칠 후, 신기하게도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먼저 만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약속을 잡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은 후, 나중에 서로 시간이 맞을 때 한 번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는가. 그녀 역시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는가? 결혼을 해야만 하는 적정한 연령이 있어서 그 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 때문인가? 사람들은 항상 결혼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한다. 특히 결혼 적령기(그런게 있다면)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어서 결혼을 해야 할텐데. 결혼을 해야 마음을 잡을텐데. 결혼을 해야 말년에 덜 외로울 것 아닌가. 결혼을 하면 살이 저절로 찌게 되어있어. 결혼 해서 자식 낳아 기르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등등... 이 사회가 결혼을 강요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라거나 고정불변의 어떤 진리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자손의 번성을 위해서다. 대대손손 자신의 자식들을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합법적인 번식의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라마다 다른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아니, 번식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쨌건 결혼이라는 것의 화려한 포장을 벗겨내고나면 그렇듯 단순하고 동물적인 동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것을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불변의 진리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 또한 있으리라. 그와 그녀도 그러한 생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반드시?

 

따뜻한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 혹은 그녀는 말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실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결혼을 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불행은 생겨난다. 결국 그와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이 반드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의 깨달음만큼 진부한 깨달음도 없다. 그것을 깨닫고도 결혼을 하고자 한다면 결혼을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이 된다. 세상에는 그렇게 결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랑도, 결혼도 모두다 진부한, 너무나도 진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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