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密雪

시월의숲 2010. 2. 11. 22:06

아침에 일어나서도, 일어나서 씻고 아침밥을 먹고 옷을 입으면서도, 출근 준비를 끝내고 자취방의 문을 열기 전까지도 까맣게 몰랐다. 오늘 아침도 어제처럼 흐렸으며, 빗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얼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취방의 문을 여는 순간 뱀의 혓바닥처럼 순식간에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눈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지만 우산을 들기 위해 내놓은 손은 금세 벌겋게 되었고, 도로는 온통 눈과 비가 뒤섞여 걸을 때마다 질척거렸다. 눈이 쌓인 줄 알고 발을 힘껏 내딛으면 눈과 빗물이 섞인 질퍽한 눈비가 온 사방으로 튀었다. 이런걸 진눈깨비라고 하던가? 덕분에 차들은 도로 위에서 거북이가 되었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바람 때문에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눈을 본 적이 있던가?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를 보다가 창 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온 사방을 빽빽히 메우면서 휘몰아치는 눈을 본 적이 있던가? 창 밖의 풍경은 마치 누군가가 투명한 유리병에 하얀 가루를 넣고 힘껏 흔드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저 유리병 바깥에 있지만, 행여 저 속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버리거나, 머리가 어지러워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쓰러져 형체없이 사라지리라. 어떤 사악한 마법사의 주문에라도 걸린 것일까? 유치한 발상이지만, 정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런 눈이 내 눈 앞에서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올 수 있단 말인가. 독하다. 사악한 주문이 아니라면 저것은 독한 것이다. 저 스스로 독해진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독하고, 사악하며, 숨막힐듯 아름답다. 숨 쉬기가 곤란해지는 건 분명 아름다움 때문이다. 저렇듯 허공을 가득 메우며 내리는 눈을 보니 무어라 딱히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느껴진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두루뭉술하고 미약하게 느껴지는 이 느낌.

 

윤대녕의 <눈의 여행자>라는 소설이 있다. 눈을 찾아 떠난 한 소설가의 이야기다. 누군가 그에게 일본으로 오라는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 속에는 일본에서 그가 묵어야 할 호텔과 반드시 가봐야 할 곳들이 적혀있었다. 하나같이 눈이 많은 곳, 몇 날 며칠 눈이 내리는 곳, 온 천지가 하얀 곳이다. 그는 비밀을 찾아 눈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눈의 여행자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지. 결말이 기억나질 않는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숨겨둔 비밀이 무엇이었는지, 눈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 기억은 주인공이 일본으로 와서 눈을 찾아다닌 장면에서 멈춰있다. 그리고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번역 때문인지 읽기에 벅찼던 이 소설 또한 눈으로 가득한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멋진 여주인공인 스밀라와 하얀 눈. 추리적 요소와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설이다. 아, 그러고보니 눈이 이야기의 주된 배경으로 나오거나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들은 대체로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하긴 눈이 오면 세상은 하얗게 변하니까. 눈으로 덮힌 세상은 마냥 깨끗하게만 보이니까. 모든 의심과 비밀, 비밀의 탈을 쓴 과거는 바로 거기서 생기지 않는가? 하얀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하얀 눈이 걷히고 난 후의 세상 풍경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어쨌거나, 다시 눈이다. 오늘같이 내린 눈. 세상을 빽빽히 채우며 휘몰아치는 눈같은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타인의 글을 통해서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든. 그것은 분명 숨막힐 듯 아름답거나 비극적인 글이 될 것이다. 작은 눈송이가 수도 없이 모여 거대한 눈보라가 되듯,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져 거대한 이야기가 되는,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을 압도하는 글. 눈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음을 아는 자의.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똑똑똑  (0) 2010.02.23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0) 2010.02.21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0) 2010.02.01
때때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0) 2010.01.27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0) 201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