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조금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월의숲 2010. 4. 5. 23:57

벚꽃이 피어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피지 않았다. 금오산으로 가는 도로가에 벚나무가 쭉 심겨져 있는데, 기대했던 꽃은 피지 않고 날씨만 좋았다. 이곳에서 얼마전에 벚꽃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는데, 참여한 사람들마다 벚나무에 대고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벚나무는 그저 새초롬이 서 있기만 한다. 보아하니 다음 주나 되어서야 만개할 것 같은데, 나는 다음 주면 이곳에 없다. 작년에는 늦은 봄에 이곳을 찾아와서 다 져버린 벚나무를 쓸쓸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꽃잎이 떨어져나간 벚나무를 보는 것만큼 쓸쓸한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지만 올해는 아직 피지도 않은 벚나무를 지켜봐야 하다니. 나는 항상 벚꽃이 피기 조금 이르거나 너무 늦은 때에 이 금오산 자락에 찾아왔다. 아,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 금오산에 가보지도, 이곳의 만개한 벚꽃을 보지도 못했구나! 물론 이곳에 온 이유가 금오산에 가기 위해서도,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왠지 금오산에 올라기기 위해서, 이곳의 벚꽃을 보기 위해서 봄마다 여기에 찾아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이르거나 너무 늦게.

 

봄! 봄은 항상 내게 그렇게 찾아왔다가 그렇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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