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혼자 있을 때 뭐하세요?

시월의숲 2010. 3. 29. 22:04

사람들은 내개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혼자 있을 때 뭐하세요?' 보통 이런 질문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곤 하는데(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 사람이 보기에 나는 혼자서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스포츠나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거나 술자리를 즐기는 것도 아니여서 퇴근을 한 후에 도대체 뭘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나. 그럴때면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워지는데, 마치 내가 뭔가 특별하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굉장한 취미라도 있어서 시간을 아주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고 있는듯이 비춰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은 혼자 있을 때 뭘하며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러면 십중팔구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밥을 해먹고, 텔레비젼을 보는 것이 전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웃으며,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말한다. 가끔씩 방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된장국과 계란프라이를 해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젼을 보며, 인터넷을 하다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책을 읽고나서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감정의 변화와 문득 떠오른 상념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다시 읽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들여다보는 일, 이 좀 특별하다면 특별한 나만의 일이랄까? 그러고 보면 나는 혼자 있음으로써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이 내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간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인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그들은 어떻해서든지 타인과 이야기하려 하고, 하나가 되려하고, 욕과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같이 있고자 한다. 그들은 한 사람과 멀어지면 또다른 사람을 찾아 헤메고,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생을 견딘다. 그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의 비참함을 확인하는 증오의 시간일 뿐이다. 혼자 있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 그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이해하기 힘든 부류일 것이다. 혼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이 보이고, 오히려 혼자임을 즐기고 있는듯 보이니 말이다. 전부 맞는 말은 아니지만 거의 맞는 말이긴 하다. 나는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커지는 시간의 무게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침묵과 공허감 그리고 고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혼자일 수 있다. 아니, 인간은 원래 혼자였으나 그것을 견디지 못해 죽는 것이 또한 인간이므로, 결국 혼자 있음으로 해서 죽지 않으려면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최초의 인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소와 농담이요, 기대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평온에 대한 믿음이다. 이제 혼자 있을 때 뭐하냐는 물음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