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벚꽃은 피고,

시월의숲 2010. 4. 15. 21:04

1.

좀 멍,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와서 다시 업무에 복귀하고 보니, 고작 일주일이었을뿐인데,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글자를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 주 따뜻했던 날씨가 요 며칠 다시 추워져서, 서서히 피기 시작하는 벚꽃들이 갑자기 피기를 멈추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런 감상에 젖기도 했다. 책은 더디게 읽히고,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아침 저녁으로 보는 바다의 드넓음과 파도소리는 여전히 견고한 침묵 속에 잠겨 있는데, 나 혼자만 멍하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바다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파도는 침묵을 대변한다. 아, 어쩌면 저 파도소리가 언어를 삼켜버리기 때문일까?

 

 

2.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릿속에 멍해져 있긴 하지만,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을 읽은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책은, 좋다, 나쁘다 등등 일체 감상적인 말들을 아무 의미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저 그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전부이고, 그 속에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책 중의 한 권은 소설이 아니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제목을 밝히고 보니 좀 김이 세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하는가? 아니,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책은 그저 읽고, 음미하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나 거대하고 지독한 불합리를 앞에두면 생각은 한없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분노하고, 생각을 바꾸고, 변화된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 이 책에 대한 너절한 감상은 그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것은 내 한없는 감상벽을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이 책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3.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 그 속에 담긴 시들도 제목처럼 다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였다. 시인은 예전의 거친 호흡으로 포효하듯, 발악하듯 내뱉던 핏빛 언어들을 덜어내고, 이제는 시간을, 시간 속을 통과해 가는 자신을 쓸쓸히, 혹은 무심히 들여다본다. 시집을 읽으면서 조금은 허탈하고, 어떤 비밀을 조금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흘러간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렇게 쓸쓸하고, 허탈한 것일까. 지난 날, 피부에 닿는 공기조차 아파하던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래, 그럴지도.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습관  (0) 2010.04.24
한없이 짜고 비린  (0) 2010.04.19
열렬하게 사랑하라!  (0) 2010.04.12
조금 이르거나 너무 늦은  (0) 2010.04.05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  (0) 201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