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햇살 가득한 날

시월의숲 2010. 5. 10. 18:54

햇살이 가득한 날이다. 조금 더운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곤 했는데 이젠 완연한 봄, 아니 초여름의 날씨다. 바다는 눈부신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서 경쾌하게 부서지고, 온 나무와 지붕들이 저마다 한가득 햇살을 끌어안고 있다. 따스한 햇살의 향연! 하지만 햇살이 따뜻하면 할수록, 눈이 부시면 부실수록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상황이나 처지가 좋으면 좋을수록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그것과는 달리 눈부신 햇살에 실려있는 한가닥 안타까움은 느닷없이 어두운 그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 좋은 날씨가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곧 부서질 것만 같아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 물론 쓸데없는 감상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햇살은 내일도 따사로울 것이며, 나무와 이름모를 풀들은 그 햇살을 받아 무럭무럭 자랄 것이기에. 내가 느끼는 이 순간의 안타까움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에. 그런 안타까움조차 느낄 겨를도 없이, 태양에 고스란히 자신을 맏길 것이기에. 하지만 이 슬픔과도 비슷한 안타까운 감정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태양이 아직은 그 뜨거운 위용을 드러내지 않고, 바람이 아직은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며, 녹음이 아직은 그 연둣빛을 간직하고 있는 이 시기에는 더욱.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병이 아닐까? 상사병과도 비슷한?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에 다녀오다  (0) 2010.05.24
'어치피 한 번 사는 인생'에 대하여  (0) 2010.05.17
내가 말하는 고독  (0) 2010.05.07
나쁜 습관  (0) 2010.04.24
한없이 짜고 비린  (0) 2010.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