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춘천에 다녀오다

시월의숲 2010. 5. 24. 21:55

춘천에 다녀왔다. 고모는, 다행히도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고, 조카들도 엇나가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아파트가 작년에 비해 좀 작아진 것 같다는(그럴리 없겠지만) 느낌 외에는 별 다른 점은 없었다. 춘천은 여전히 춘천이었고, 고모는 여전히 고모였으며, 조카들은 여전히 조카들이었다. 특별히 달라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데서 오는 안도감이랄까, 편안함이 있었다. 춘천에 도착한 첫날은 꽤 더운 날씨였고, 둘째 날은 흐렸지만 덥지 않아서 걷기가 좋은 날씨였다. 둘째 날 우리는 비교적 일찍 일어나 '아침고요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연휴라 그런지 수목원을 불과 50미터 앞에두고 정체가 되어 차 안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내 눈으로 직접 본 수목원은 넓고 아름다웠다. 아쉬웠던 점은 '아침고요 수목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 좀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야생화와 나무들의 이름을 맑은 눈으로 하나씩 새겨가면서 고요히 산책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하긴 도심의 매연과 소음에 찌든 사람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저 소란스러움은 저들이 가진 삶의 여유와 반비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저들이 좀 불쌍하다 여겨지기도 했다. 수목원을 올라오면서 본 수많은 펜션들, 이미 지어진 것들과 앞으로 지어질 것들이, 마치 자연을 향한 저들의 안타까운 몸부림 같아 보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인간들이 지어놓은 수목원은 아름다웠지만, 인간들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던 풍경이었다. 그 속에 나또한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 감정, 알 수 없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수목원을 나오면서 본, 반대편 차선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차량의 행렬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춘천에서 유명하다는 가마솥장작 곰탕과 숯불 닭갈비를 땀을 흘려가며 먹었다. 남이섬에 가려 했지만 많이 정체될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은 끝이 났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내일부터는 남들이 원하는 나를 연기하러 출근을 하고, 일을 하며, 퇴근을 해야겠지.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이 꿈인 것만 같다. 남는 것은 몇 조각의 기억뿐.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기억인지 꿈인지조차 흐릿해질, 몇 조각의 허상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