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쁜 습관

시월의숲 2010. 4. 24. 20:44

내 부족함과 나악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로하는 것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하는 변명처럼 들리기 쉬워서, 끝내 나 스스로를 혐오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습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고나면, 아니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아니 내 부족함과 나약함, 게으름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 나는 끝내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그래서 정작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는 말만 늘어놓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자학은 멈추지 않는다. 이 또한 잘 알고 있다. 아, 여기서 오해하면 안된다. 이것은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초석이 되는 길일텐데, 내 깨달음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중얼중얼 변명만 늘어놓음으로써 끝내 자학을 하고야 말게 한다. 그러한 자학은 자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요, 소통없는 관계와 같이 불구의 형태를 띤다. 그러한 기형적인 자기애에 빠진 사람은 더이상 자라지 않는 나무와 같다. 언젠가는 말라 비틀어질 운명을 고스란히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나르시시즘으로 범벅된 자책과 변명 또한 그 한 형태이다. 자신 스스로가 그은 한계선 안에 안주하며 운명론과 허무주의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진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만해도 끔찍해서 몸이 다 떨릴 지경이다. 습관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무서워서 모른척 엄살을 피우는 인간을 우리는 겁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나는 겁쟁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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