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치피 한 번 사는 인생'에 대하여

시월의숲 2010. 5. 17. 00:18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라는 말이 요즘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무엇 때문에 나는 그토록... 뒤에 삼켜진 말들은 쉬이 내뱉어지지 않는다. 여기가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블로그이고 일기장처럼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더욱 조심스럽게 여겨진다. 내가 이곳에 내뱉은 말들은 어느정도 나만의 진심을 담고 있긴 하지만, 나도 모르는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를 어떻게 각색하고, 미화하고, 깎아내렸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익명이 최대의 무기인 이 공간에서조차 시원스레 나 자신을 발설하지 못하는(어쩌면 전부를 드러내는 것이 더 세련되지 못한 일일까?) 내 나약함을 나도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때때로 느껴지는 급격한 갈증과 알 수 없는 숨막힘은 자꾸만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내이게 한다. 그러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도대체 두려워 할 것, 무서워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좀 더 자유롭고, 용감하게 나는 나를 드러내 보일 수는 없을까?

 

언젠가 혼자 사는 내 자취방에 직장 동기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내 방에 놓인 CD와 책들을 훑어보더니 남들이 듣지 않고, 읽지 않는 것들을 많이 듣고 읽는다며 놀란듯 나를 쳐다보았었다. 그러더니 언젠가 내가 즐겨 듣고 읽는 음악과 책들을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위로(?)아닌 위로까지 건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실소가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누가 이해해주길 바라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듣는 음악과 읽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긴 했지만, 그 이후로 그를 만날때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해, 라는 터무니없이 위선적인 단어를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오해,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정당한 오해일 뿐. 하지만 정당한 오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와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말이 화두처럼 떠오른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두 번도 아니고 고작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게 사람의 생인데 나는 무엇하러 그토록 CD와 책을 사고, 그것도 부족해 끊임없이 사 모으려고 애를 쓰는 것인가? 내가 죽고나서도 남아 있을 음반과 책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확 돋는다. 중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가 돌아가실 즈음에는 자신의 모든 책을 출판하지 말라고 했던 법정 스님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널리 읽혀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책을 썼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생산될 책을 생각하니 어느 순간, 소름이 확 돋은 것은 아닐까? 물론 생에 미련을 두지 않는 스님과 나를 일대일로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알베르 카뮈가 <결혼, 여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생생히 살아남아 있을 모든 사물들에게 질투가 난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뭐니 하는 말로 나를 좀 달래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 '한 번 사는 인생'을 위해 뜨겁게 나를 달굴 자신이 있는지. 인생 한 방 역전을 위해서 하는 건달들의 입버릇이 아닌, 인생을 정말 후회없이 살 용기와 결단을 가진 자의 가슴에 새겨진 말이 되기를 바라면서. 인생은 두번다시 되풀이되지 않기에 비로소 가벼울 수 있음을 나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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