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니

시월의숲 2010. 6. 1. 20:46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어서일까? 요며칠 세상이 너무나도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깝게 느껴진다. 출근을 할 때면 시끄럽게 울리는 트럭의 선거 유세 소리와 단색의 유니폼을 차려입은 아줌마들의 어설픈 율동과 인사를 보면서, 과테말라 시내에 엄청난 크기의 구멍(!)이 뚫려서 건물들이 사라져버리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선박을 공격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은데(선거도 물론!),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시끄럽고 가깝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텔레비전을 켜면 등장하는 선거판의 돈다발과 후보자간의 악날한 인신공격과 비방에 분노를 금치 못하다가도, 그것이 결국 정치판과 정치인들의 실체였음을, 모두가 많게든 적게든 뿌리부터 썩은 인간들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허무하다. 결국 선거도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에서 내가 가진 한 표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심히 회의가 드는 것이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투표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내가 살고 있음을 표시하는 행위이며 내가 가진 최소한의 현실개혁의지(거창하게도!)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표를 하지 않고는 그들의 잘잘못을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욕을 할 자격도 투표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한 표로 세상이 바뀌는, 만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선거일이 지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선거법 위반자들로 시끌시끌 할 것 같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당선된 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은 과테말라의 거대한 구멍위에 존재했을 건물들처럼, 선거할 때만 존재했다가 선거가 끝난 뒤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흔적도 없이. 그러다 다음 선거 때 다시 귀신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더욱 불어난 돈다발과 충혈된 눈과 번들거리는 개기름, 믿을 수 없이 튀어나온 배와 함께. 이런이런. 나는 이러한 것들과 담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왜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거지? 하긴,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니. 이 더러운 세상에서 인간이란,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