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래되었지만 항상 처음인 것만 같은 외로움

시월의숲 2010. 5. 26. 20:26

타인의 블로그를 훑어보다가 불현듯, 내가 정말로 외롭구나, 이게 외로움이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몸서리가 쳐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나보다는 조금 덜 외로운 것 같고, 조금 더 삶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요즘은 예전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미니홈피를 개설해볼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으니,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텔레비전만 틀면 온통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별반 다를바 없는 세상이 나에겐 너무 가혹하다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든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부럽기 때문인지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활기와 확신에 찬 생활과 아름다워만 보이는 인간관계(실제로 그들이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치고 있다해도)가 나는 그저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러움을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부러움이라니, 그건 또 뭔가. 부럽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라고? 이 말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외로움은 항상 내가 지니고 있던,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내 안에서 생성되어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잊고 지냈으나, 어느 순간 벼락처럼 내가 내 외로움을 느끼는 날이면 그것은 항상 처음인 것처럼 나에게서 벗어나 타인의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고문한다. 타인의 얼굴을 한, 오래되었지만 항상 처음인 것 같은 내 외로움에 나는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것이 진정 외로움이란 말인가?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내가?

 

타인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생각해보면 내 외로움은 내가 가진 고독에 발을 담그고 있다. 결국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 어느 누구의 손길이나 따스한 말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내 안의 블랙박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로움이 오래되고 오래되어도 블랙박스는 열리지 않는다. 언젠가 내 외로움을 내가 처음 무언가를 접했을 때의 낯섦이 아닌,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친근하게 느끼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때서야 나는 진정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닐 것만같은 예감이 바람처럼 나를 스친다. 내가 나자신이 아니라면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정과 열정 사이  (0) 2010.06.19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니  (0) 2010.06.01
춘천에 다녀오다  (0) 2010.05.24
'어치피 한 번 사는 인생'에 대하여  (0) 2010.05.17
햇살 가득한 날  (0) 201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