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하녀

시월의숲 2010. 9. 20. 20:56

은이(전도연)처럼 순수한 사람이 있을까?

그 순수함이 세속적인 부유함에서 나오는 안하무인과 뼛속까지 더럽고 위선적인 허영과 만난다면 어떤 파괴력을 보일까? 결국 자신 스스로의 파멸로 종결되고 말았지만, 그것이 백지처럼 순수한 은이가 가진 최후의, 그리고 최대의 방어이자 공격이었다는 말일까? 순수함이란 그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가 아니라  '나는 언제든지 내 온몸과 마음을 내던질 수 있어요'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는 말일까?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내게 이런저런 의문을 안겨주었다. 기대했던 미스테리와 스릴은 보이지 않고 조롱과 농담만이 가득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스릴감있게 은이와 훈(이정재), 해라(서우)의 관계를 묘사할 수 있었을텐데, 감독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스릴러물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뭐, 이건 이것데로 즐길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리 실망스럽지만은 않았다. 은이가 훈의 대저택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영화가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바람에 감독이 의도한 부유층에 대한 조롱과 농담이 약간 희석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배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새삼 느꼈지만 전도연은 정말 타고난 배우인 듯. 그녀가 표현하는 백지처럼 순수하고 폭적적이며 단순하기 이를데없는 하녀를 보고 있으면 감정이입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게 캐릭터의 힘인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힘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후자이지 싶다. 영화를 보고나서 그녀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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