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천십년 시월 이십일

시월의숲 2010. 10. 2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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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낮의 따스한 햇살은 가을보다는 오히려 여름을 느끼게 한다. 여름의 끈질긴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시월. 시월의 중순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처럼 매일매일 이별하면서, 점점 멀어지면서 살고 있겠지. 무엇과 이별하는지, 무엇과 멀어지는지 모른채. 나는 훗날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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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갓 태어난 내 조카를 보기 위해 창원에 다녀왔다. 아이와 동생 모두 건강했다. 아이를 낳은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아마 동생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나와는 조금 달라졌으리라. 조카를 비롯해서 처음으로 본 신생아실의 아기들은 내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검은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아기, 젖병을 물고 눈을 꼭 감고 있는 아기, 세상 모르고 잠자는 아기, 뭐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는 아이, 자다가 갑자기 슬며시 미소짓는 아기, 아기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겠지. 까마득히 먼 시간을 간직한 아기들. 그곳에서 나는 소외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좀 슬퍼졌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또 무엇일까.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아기들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기쁘지만 끝내 슬퍼지고야 마는 감정의 변화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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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새앨범이 나온단다. 리메이크 앨범이라고 해서 무슨 곡을 골랐을까 궁금했는데, 팝송이었다. 그녀만의 탁월한 목소리가 있으니 리메이크 앨범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없고 무미건조한 내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줄 수 있겠지. 그래, 그렇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 문만 열만 보이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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