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무 것도 아닌 날들에 관한 부질없는 기록

시월의숲 2010. 10. 2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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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 나는 사실 내가 낸 돈의 절반만큼도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돈이 아깝다는 것이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반드시 많이 먹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막상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앞에 서면 마법처럼 배고픔이 사라진다! 그래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이것저것 담아가지고 와서 먹기 시작하지만 역시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한다. 고작 한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나면 배가 불러오니, 테이블 위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그때부터 내게 그림의 떡이 된다. 씨름선수나 되면 돈이 아깝지 않게 먹을 수 있으려나?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더니 그는 정말로 씨름선수가 뷔페식당을 가면 식당주인이 무척 싫어한다고 했다. 씨름 선수 한 두명 정도가 같이 가면 모르겠지만, 단체로 뷔페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면 제지를 당한다나 어쨌다나.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고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먹을테니 말이다. 암튼 뷔페는 그 많은 양의 다양한 음식들에 비해 내게는 별 실속이 없는 음식문화다. 차라리 초밥이면 초밥, 고기면 고기 이렇게 먹으면 많이 먹을 수 있을텐데. 하긴 내가 먹을 수 있는 양이 원래 적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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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게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는 경향이 있다. 음식이면 음식, 섹소폰, 좋아하는 연예인, 싸이클, 인라인, 서예, 등등.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들을 즐기며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동호회를 만들어서 만나곤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그런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나도 관심있는 분야와 즐기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 같은 것은 아직까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적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혼자일 수밖에 없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때때로 나는 그것이 몹시 의아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떳떳하게 나를 공개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는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래,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야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아프다. 물론 거짓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되도록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애초부터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는 것이다. 만나지 않으면 슬플 일도 없고, 배신당할 일도 없으며, 손가락질 당할 일도 없을테니까. 이것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 이에 따르는 공허함과 고독감도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같은 취미나 취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허울뿐인 만남일텐데. 너와 내가 같은 종류라고? 그래서 어쩔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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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특별할 수 있는 건, 생일지 지남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 먹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은 죽음에 한 살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이며, 그것을 축하한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짐을 축하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삶보다는 죽음이 좀 더 특별하다는 것. 아니, 어쩌면 삶과 죽음은 똑같이 특별할 일이 없는 것일지 모르나, 살아있는 인간은 죽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좀 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일날 자신의 나이만큼의 촛불을 끈다. 그것은 자신의 나이만큼의 삶을 과거로 날려보낸다는 뜻이며 한 번 꺼진 촛불은 다시 켜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생일축하란 그저 살아있는 자들이 하는 자기위로이며 부질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보라. 인간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러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는가. 그 부질없음이 때로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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