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행복한 삶, 행복한 죽음

시월의숲 2010. 10. 8. 22:25

행복전도사로 이름을 날렸던 최윤희씨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모텔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A4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되고 모텔 침입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된다는 기사를 읽고 잠시 충격에 빠졌다. 텔레비전에 나와 온갖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복한 삶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던 그녀였기에 더욱. 하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보다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무엇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그녀의 확신에 찬 얼굴과 말투,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와 삶에 대한 긍정은 다 무엇이었나? 그녀가 남겼다는 유서를 읽어보니 그녀를 자살로 이끈 원인은 다름아닌 자신의 건강문제였다. 온 몸에 번지는 병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기도했고, 결국은 성공했다. 유서를 담은 봉투의 겉면에는 자신과 함께 죽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고 간 병의 고통을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마는, 자살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왜 끝까지 병마와 싸우지 않았냐고, 그래서 당신이 말한 행복한 삶, 삶에의 긍정을 몸소 실천하지 그랬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의 고통은 내 상상력 밖에 있고, 나는 그녀의 절망을 알지 못하니까. 어쩌면 그녀가 사람들에게 설파한 행복이라는 것도 건강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였을까? 병이 자신의 숨을 거두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행보가 그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봤을 때 모순적인 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가 수없이 말한 인간적인 행복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일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녀의 삶과 죽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는 혼돈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느끼는 혼란스러움도 이러할진데, 그녀 자신은 어떠했을런지. 그래,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자. 죽음은 곧 침묵. 지금은 침묵할 때다. 그저 영원히 고통없는 곳으로 간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그녀 자신이 부디 행복했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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