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숨쉬는 이유

시월의숲 2011. 3. 23. 21:25

정신을 차린 것이 얼마만인지. 그동안 내가 무얼 했는지도 모른채 시간만 흘렀다. 책을 읽을수도, 음악을 들을새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무감각하게, 쫓기듯 살고 있었으니. 아직도 멍한 기분은 가시지 않지만,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듯 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나? 후회해도 소용없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라니! 나는 후회할 여유조차 가져보지 못한채 돌처럼 굳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는데! 늘 잠이 모자라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가슴을 적실만한 그 무엇도 내겐 없었다. 불현듯 나는 그 사실, 내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그 사실이 소름끼치게 무서웠고, 급격히 고독해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상대하고, 잠을 자는 것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두 눈은 생기로 빛나고, 입술은 붉고 투명한 빛이 흐르며, 피부는 하얗고 부드러운 사람. 늘 활기에 찬 사람. 마치 자신은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살아있는 그 자체가 행복에 겨운 사람.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들은 그러하리라. 그들에게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와 너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랑의 유효기간은 너무나도 짧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듯 짧기 때문에, 강렬한 불꽃의 한순간을 간직한채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은 호르몬의 미친 작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한순간의 강렬한 불꽃에 몸을 던지지 못한 사람. 죽지못해 사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하지만 나는 불감(不感)의 삶을 바라지 않았던가? 내가 바란 것이 무엇이었나? 나는 무엇 때문에 숨을 쉬고 있는가? 갈수록 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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