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봄날, 일요일 오후

시월의숲 2011. 4. 10. 17:31

어느새 개나리가 피었고, 목련과 진달래가 피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세상에 와 있더라, 는 식의 놀라움이 불현듯 든다. 자연의 색이라는 것은 그것이 생명을 품고 있기에 더 생생하고 아름다운 것이겠지. 하지만 취할 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가버리는 것이 봄이라는 계절의 속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 이 따스함도 언젠가는 덥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막 피어나는 꽃을 보고 앞으로 지고 난 후의 쓸쓸함을 감지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성일까.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를 묵묵히 들여다본다. 그들이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를 나는 듣고 있는가.

 

날씨는 이렇듯 좋은데, 일본의 원전 때문에 우리나라도 난리다. 황사만 해도 신경이 쓰이는데, 방사능비라니. 더구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다니. 우리나라 이곳 저곳에서도 요오드니 세슘이니 하는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등 말이 많다. 생전 모르고 있던 용어들을 들으면서, 생전 알 수 없었던 방사능 오염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뭔가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날씨와 너무나 안 어울리는 것들이 아닌가. 거짓말처럼,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죽고, 땅이 갈라지고, 건물들이 무너진다. 우리가 이 땅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미 너무 많이 저지른 것은 아닐까. 땅과 하늘이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들 때문에.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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