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슴이 시린 이유

시월의숲 2011. 4. 22. 21:17

1.

어쩐지 잘 버틴다고 생각했다. 환절기만 되면 걸리는 감기마저 이번에는 운좋게 비켜가나보다 생각하던 찰나,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몸살기운이 금세 번졌다. 밤에 외출을 잘 하지 않다가 이틀 전에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밤은 꽤 쌀쌀했다.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오늘까지도 몸이 무겁고 미열이 일었지만 약을 먹어서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

친구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나는 때로 말문이 막힌다. 며칠만에 만난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 날씨라던가, 근황, 최근에 본 영화, 이성에 관한 시덥잖은 농담 등을 서로 건네고 나면 이내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와의 대화란 늘 그런 식이다. 그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에 상대방이 관심이 없다면 혹은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것에 내가 아무런 흥미가 없다면 우리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친구란 많든 적든 간에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던가? 그들이 건네는 지루한 농담과 전혀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주제에 일일이 응대를 해주기란 여긴 힘든 일이 아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내가 그들에게 친구라 불릴 자격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느낀다면, 서로가 그렇게 무미건조한 만남에 지루해하고 있다면 왜 가끔씩이나마 만나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 이기적인 이유로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기적인 이유란 각자가 가진 외로움일테지. 그래, 우리는 그렇게 외롭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하며,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회에 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때면 무척이나 슬퍼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들도 그럴까? 알 수 없다. 누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라고. 그래, 이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 뿐. 네 생각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 할 말을 잃어버리고 허방만 짚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친구란 모두 그런 존재들일 뿐. 가슴이, 가슴이 너무나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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